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꾼다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보정되는 것 아냐
(책임)총리제는 국회와 행정부의 권력분립 훼손하고, 여야 짬짜미하는 국회의 질곡을 가중
사표 줄이는 방법은 정당 전체 특표율로 의원수 배정하는 개방형 비례대표제
스웨덴, 텐마크의 개방형 비례대표제는 정당공천이 아니라 시민이 정당과 후보자를 동시에 선택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승리, 주권자 국민의 승리라고들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사태에 이르게 된 원인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의견은 각양각색이라, 혼동은 다소간 이어질 전망이다.
원인 관련하여 이번 탄핵은 대통령 윤석열의 가정보호, 치우친 감정, 대화 부족, 포용력 부족, 자만에서 기인된 것 아닌지 하는 견해가 있다. 이 같은 견해는 개인의 자질을 제도적 차원의 측면과 서로 혼동한 것이다. 개인은 저마다 다소간에 부족한 점이 있다. 문제는 민주정치란 원래 도덕성이나 능력에서 완벽한 인간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나 가릴 것 없이 함량 미달인 인간들이 서로 모여서 도모하는 것이 민주정치이다.
탄핵의 원인 진단에서 개인의 자질을 운운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개개인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사태를 두 번 맞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초점이 놓여져야 한다. 그것은 개인의 자질이 아니라, 권력 집중의 크기에 달린 것이다. 아무리 가정을 보호하고 싶은 욕심, 치우친 감정(편견)에다 자만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손에 권력이 없으면 누구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고 사회에 물의를 빚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계엄령 혹은 쿠데타가 유럽 선진국이 아니라 후진국에서 자주 발생하는 주된 이유는 권력이 세분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식민지배를 받다가 독립되었고, 또 각종 독재정권이 연이었던 한국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개인의 성격이나 자질 운운하는 것은 사태를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를 다 합친 것보다 더한 것이 윤석열이라고 한다면, 그 같은 집권적 권력구조에서 이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한 이가 다시 나오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분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중앙의 권력을 각 지역으로 분산하는 것과 함께, 또 중앙, 지역 불문하고 온갖 공권력이 잘못 쓰이지 않도록 견제 및 처벌 장치를 두는 것이다. 그 궁극적 처벌의 권한은 모든 권력의 원천으로서 국민 민중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분권은 두 가지 측면, 즉, 중앙권력의 지역분산, 또 위정자들에 대한 국민 민중의 견제 권한의 강화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입법의 여의도 국회에는 행정, 입법, 사법 등 중앙 정부에 집중된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하거나 민중에게 환원할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을 고쳐서 대망의 제7공화국을 위한 개헌 운운하면서,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를 타파해야 하겠다는 의지나 개념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더 강화하려고 한다.
그 증거가 바로 4년 중임제 대통령제와 양원제 국회의 개헌 발상이다. 윤석열이 탄핵된 직후, 전 민주당 의원 김두관은 “‘제왕적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분권형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꾸는 것”,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외교‧안보 분야에 집중하고,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시” 등이 제7공화국을 위한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김두관의 이 같은 외침은 이번 윤석열 탄핵 이후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외어오던 해묵은 것이다. 또 그이 혼자가 아니라, 여야 막론하고, 당 대표는 물론 전 국회의장 김진표, 현 국회의장 우원식 등 국회 전반의 대세가 그러하다.
김두관은 “‘제왕적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분권형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꾸는 것”이라고 했으나, 이 말은 무책임한 것이다. 5년 단임은 제왕적인데, 4년 중임이 되면 대통령이 제왕이 아닌 것이 되나? 5년 단임이나 4년 중임은 제왕적 대통령 여부에 아무런 차이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김두관이 ‘제왕적 대통령’을 탓하면서 5년 단임을 4년 중임제로 바꾸자고 하는 것은 자의적인 비약이다.
한편,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그 권한을 총리에게로 옮기자는 김두관의 제안은 파생적으로 국민의 정치적 발언권을 무력화하는 어마무시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뽑지만, 총리는 국회에서 의원들이 뽑기 때문이다. (책임)총리제 운운하는 것은 국회를 국민 위에 군림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 마담’으로 만들고, 내치는 국회에서 주무르겠다는 뜻이다,
다시 이는 국회와 행정 간 간격을 허물고, 3권분립 원칙을 한갓 물거품으로 돌리겠다는 음모이다. 국민 민중이 뽑는 대통령을 합바지로 만들고, 여야가 협치, 담합, 짬짜미하는 국회에서 총리를 세워 행정부를 장악하겠다는 뜻이다. ‘제왕적’ 대통령 대신 ‘제왕적’ 국회를 만들려고 획책하는 것이다. 1987년 피로써 이루어낸 대통령 직선제의 의미를 국회가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
이번 탄핵을 전후한 국면에서, 대통령 윤석열이 먼저 자신의 권한을 총리와 우리 당(국힘당)에게로 넘기겠다고 운을 뗐고, 바로 그 즈음 국힘당에서 책임총리제 운운하는 발언이 나왔다. 국민 민중이 뽑은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다른 누구에게 자의로 전가할 수 있나? 그런 법은 없다. 위정자들끼지 권력을 편의로 주고받고 하려는 위헌적인 발상을 서슴없이 공론화하고 있다. 여기서 (책임)총리제란 국민의 정치적 발언권을 봉쇄하고, 여야 위정자들끼지 거래(딜)하겠다는 청사진이란 사실이 입증된다.
김두관이 ‘제왕적’ 대통령제 운운하면서,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겠다는 것은 논리가 닿지 않는 자의적 비약이며, 대통령의 내치 권력을 총리에게로 넘기겠다는 것은 국회가 행정부까지 장악하겠다는 비민주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최근 명태균 ‘게이트’에서 수면으로 떠올랐으나, 그전부터 이미 국회는 공천권을 가지고 돈 장사하는 곳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윤석열, 혹은 김건희가 국힘당 의원 김영선 공천에 관여했다든가, 또 국힘당 내 주요 간부가 지방 군수 공천해주고 20억을 받아 챙겼다거나 하는 소문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만악의 근원은 권력에서 나온다. 현재 각 정당은 공히 정당공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김두관은 사표를 없애기 위해 중대선거구제 및 연동형 비례제를 제안했으나, 이런 제안에는 정당공천권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었다. 이것은 현재의 정당공천권을 제7공화국에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저의를 담은 것이다.
그러나 사표를 없애는 것은 정당공천권을 전제로 한 중대선거구제 및 연동형 비례제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스웨덴, 덴마크같이 개방형 비례대표로 하면 된다. 개방형은 국민 민중이 직접 선호하는 정당과 동시에 인물까지 선택하는 것이고, 정당별 특표율에 따라 정당 의원수가 배정되므로, 사표도 없어진다. 정당이 공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정당뿐 아니라 후보자를 직접 선출하므로, 정당에서 알게 모르게 하는 ‘공천 장사’ 관행도 없어지게 된다.
전두환의 전 사위라고 하는, 국힘당 의원 윤상현은 이번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다. 그 이유가 권력을 뻬앗기기 싫다는 것이었다. 또 국힘당에서 이번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는데, 그 이유가, 지금 탄핵하면, 정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다. 또 윤석열 탄핵하면, 이재명도 같이 다음 대선에 불출마한다는 선언을 하라고 요구했다고도 한다.
이렇듯 국힘당의 비논리적 요구와 주장은 죄다 권력을 갖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국회가 비정상으로 가동되는 이유는 국힘당이 ‘악마’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욕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고, 그 권력욕은 부득이한 인간적 탐욕이다. 탐욕으로 인한 국회의 비정상 가동은 누구를 악마화함으로써가 아니라, 그 탐욕을 부추기는 권력의 크기를 줄임으로써 교정될 뿐이다.
이런 마당에, 김두관이 외치는 바와 같이, 국회에서 뽑은 총리에게 대통령의 권력까지 더하자고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국회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빼앗아 지역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그것은 지역정당을 합법화하고, 지방자치 행정 및 의회의 권한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정당공천권 자체를 없애고 시민의 권한을 강화하고, 스웨덴, 덴마크 같이, 민중 시민이 정당과 후보를 같이 선택하는 개방형 비례명부제를 실시해야 한다. 정당별 특표에 따라 의원수가 정해지므로, 사표도 발생하지 않는다.
또 아무런 근거 없이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 대통령으로 하자고 강변할 것이 아니다. 단임으로는 소신껏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시민의 뜻이 우선적으로 개진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대통령을 포함하여 정부는 뒤로 물러서서 보충적으로만 개입해야 한다(국가 보충성 원칙). 대통령이 자기 소신을 펼 수 있도록 4년 중임제 하자는 발상이 바로 오늘 같은 독재의 위협 앞에 시민을 몰아넣는 단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