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중앙대 교수)와 최영태(전남대 명예교수)가 의원내각제(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창
김누리가 주창하는 교육개혁은 의원내각제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
한겨레신문이 의원내각제 및 (책임)총리제 주창의 나팔수
중앙대 교수 김누리가 한겨레신문에 “해방 80년, 제7공화국 시대를 열자”라는 제하(題下)의 글을 실었다. 김누리는 “윤석열은 제왕적 대통령의 전형, 신자유주의의 선봉장, 권위주의의 화신, 능력주의 및 경쟁교육의 산물”, “제왕적 대통령제, 권위주의적 조직문화, 능력주의 경쟁교육을 개혁하지 않는 한 괴물 윤석열은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의원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바꾸고, 수구-보수 과두지배 체제를 유지시키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막아온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썼다.(한겨레, 2024.12.18.)
여기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윤석열이 상징하는 제왕적 대통령제, 능력주의 및 경쟁교육을 척결하는 방법이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의원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본 것, 둘째, 수구-보수 과두지배 체제를 유지시키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막아온 것이 사람이 아니라 선거 ‘제도’ 탓이라고 본 것이 그러하다. 정작 분탕질 치는 것은 사람인데, 사람을 괄호 안에 넣어 보이지 않도록 하고, 모든 것이 제도 때문에 비롯된 것인 양, 김누리가 주체를 왜곡해버렸다.
김누리의 지론에 따르면, 분권형 대통령제(의원내각제)를 하고 선거제도를 개혁하면, 느닷없이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같은 이가 나타나지 않고, 또 그 윤석열을 여전히 옹호하는 국힘당 같은 이들이 나오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제도가 있든 없든, 또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관건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제도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
제도가 있어서 비로소 삶이 이루어지고,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명문(明文)화한 제도가 없어도 사회는 작동한다. 김누리의 주장은 윤석열이 계엄을 통해 초래한 상황에 대한 처방이라기보다, 이 엄중한 상황에 빗대어 자신이 평소에 주창하던 바를 다시금 되새기는 기회로 삼은 것일 뿐이다. 그전부터 김누리는 같은 한겨레신문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척결을 피력해왔고, 그것은 국회 중심의 의원내각제를 옹호하는 것이다.
의원내각제는 부득이 국회에서 뽑거나 천거하는 총리제와 다소간 연결된다. 국민이 뽑는 대통령의 권한을 다소간에 국회에서 좌지우지하는 총리에게로 넘기자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김누리는 국민 민중의 정치적 발언권을 배제하고, 국회를 정치의 핵심 교두보로 삼고자 하는 의중을 드러냈다.
김누리가 말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분권’이 뜻하는 것은 권력의 지역분권, 혹은 국민 민중에게 정치적 발언권을 분여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의원내각제의 국회, 혹은 국회에서 뽑은 총리에게로 분권하자는 뜻이다.
필자가 의아해하는 점은, 독일에서 수학했다는 김누리가 어떻게 독일의 지역분권에 대한 개념이 전무한가 하는 점이다. 독일은 16개 주(란트)가 독자적 헌법, 주의회 등을 갖추고 있고, 중앙의 연방정부는 최소한의 기능만 위임받고 있다. 각 지역은 당연히 고유성을 간직할 권리가 있는 것이므로, 지역이 서로 갈등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후자는 중앙집권적, 획일적 권력구조의 산물이다.
이보다 더 이해 불가한 것은,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분탕 국회의 질곡을 보면서, 어떻게 그 국회에 대통령의 권한까지 떼어서 넘기자는 발상을 전개할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지금 내란을 옹호하는 총리 한덕수의 몽니 부림을 보면서, 어떻게 감히 의원내각제를 하자고 하고, 총리 등 행정부까지 국회의 입김이 미치는 내각제로 하자는 것인지.
김누리는 “‘국가 대개혁 범국민시국회의’(가칭)를 구성할 것을 제안”, “학계, 교육계, 종교계, 노동계, 문화계, 법조계 등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정치계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비전, 제7공화국의 청사진을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정치적 수사(修辭 겉치레)에서 김누리는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 우원식의 판박이이다. 일전 우원식은 여론 18% 찬성에 불과한 양원제를 극구 추진하겠다고, 여야 대표(한동훈, 이재명), 헌법학회장, 국회의원들을 모아놓고 국회에서 개헌 촉구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그 개헌이 마치 민의를 업은 것인 양, 빼놓지 않고 ‘시민’의 뜻을 언급한다.
김누리는 우원식같이 실제의 민의를 살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의원내각제, (책임)총리제 등 방향을 정해놓고, 국민 민중을 선동하고 있다. 하의상달이 아니라 상의(上意)를 아래로 강요하는 것이다.
김누리는 김한길(윤석열 정부 초대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의 동생이다. 김한길은 국민당(故 정주영 창당), 민주당, 현 국힘당을 넘나들어, 유연한 이, 줏대 없는 이로 세간에 회자한다. 김누리와 김한길 형제의 부친(길철)은 “진보적인 사회민주(사민)주의자, 1950~1970년대의 어려운 정치환경에서도 사민주의를 꼿꼿하게 추구한 진정한 진보주의자였던 것으로 전하고, 그래서 형 김한길이 아니라 동생 김누리가 부친이 추구한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여기에 주의할 것이 있다. 사람의 가치를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초래하는 부작용이다. 누구나 사람은 한결같을 수가 없고, 또 100가지를 다 잘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을 믿기 보다, 그 행위를 사안마다 평가, 반성, 보충, 질책할 필요가 있다. 한두 가지 행위 혹은 주장이 긍정적인 측면을 갖는다고 해서, 다른 것도 죄다 믿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거리이다. 그 우둔함은 부메랑이 되어 우리 자신에게 누를 끼치게 된다.
김누리는 교육문제만 해결되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나 각종 사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교육 방식은 정치, 사회적 환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김누리는 간과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암기식, 주입식 교육 및 (5지)선다형(몇 개 항목 가운데 정답 또는 가장 적당한 항을 고르는 방식) 시험은 창조적, 자유의 전사가 나오는 것을 꺼리고 말 잘 듣는 수동적 인간을 양산하려는 정치 사회적 풍토에 대한 맞춤형이다. 제반 사회조건이 서로 엮여있어, 교육을 우선순위로 두어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제반 환경을 별론으로 하고 교육만 따져 생각하더라도, 총리제를 가지고서는 김누리가 주창하는 경쟁교육, 대학입시, 대학 서열, 대학 등록금 등을 폐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전망은 한덕수를 보면 안다. 총리를 세우면, 그이가 윤석열같이 월권하고 법을 아전인수로 해석할 것 같다. 한덕수는 내란과 기득권을 수호하는 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김누리는 교육 개혁을 주창하면서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론을 찾지 못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그의 교육개혁 주창은 허황하다.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하든, 국회에서 추천 혹은 선출하든, 결과는 다를 바가 없을 것이 명확하다. 지금 내란에 동조하는 국회 소수당 및 그 대표 권성동을 보면 불문가지(안 물어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국회에 무엇을 믿을 게 있다고, 국회에서 뽑은 총리에게 대통령 권한까지 더 얹어 나누어주라고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
덧붙여, 한겨레신문이 ‘제왕적 재통령제’에 터잡아 의원내각제, (책임)총리제 등을 홍보하는 나팔수가 된 것 같다. 한동안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성한용이 줄곧 총대를 매고, 김누리 등이 측면에서 엄호하더니, 이틀여 전에는, “헌재 탄핵안 심리기간이 권력분산형 개헌의 적기”라는 표제로 전남대 명예교수 최영태(광주전남비상시국회의 상임대표)의 ‘사설 칼럼’ 글이 실렸다.(한겨레, 2024.12.24.)
최영태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심리기간에 제7공화국 헌법을 만들자”, “권력분산형 개헌과 사회대개혁을 통해 2024년 탄핵정국이 무혈 명예혁명으로 기록되도록 정치권과 국민이 힘을 합하자”고 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에게로 나누어주자고 제안했다. 최영태의 입장은 김누리와 똑 닮았다. 최영태의 이 같은 발상도 김누리와 같이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고 해묵은 것이다. 윤석열 비상계엄을 맞아 생겨난 것이 아니고, 전부터 익히 주창해 왔던 것. 그런데 이번 내란을 기회로 삼아 의원내각제 및 (책임)총리제를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다. 거기다 빼놓지 않고 국민이 원하는 것으로 포장하려는 점에서도 최영태는 김누리를 닮았다.
김누리, 최영태 등의 눈에는 한쪽만 보이는 것 같다. 윤석열이 불법으로 자행하는 패악질이 사람 탓이 아니라, 엉뚱하게 대통령제도 탓으로만 보이는 것, 그 윤석열을 옹호하는 총리 한덕수의 몽니 부림을 눈앞에 두고도, 총리제 하자고 주창하는 것, 내란을 옹호하는 국힘당이 똬리를 틀고 앉아 질곡에 처한 국회에 대통령 권한까지 빼앗아 넘겨 의원내각제 및 총리제를 하자고 강변하는 행태가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