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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34) 기본권 보호 아닌 침해의 한국 헌법재판소 - 한겨레신문, 하네스 모슬러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구하기”에 부쳐 -

최자영 | 입력 : 2024/05/21 [13:37]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이 공정성과 삼권분립 훼손
미국에는 (연방)헌법재판소가 없고, 일반 법원에서 위헌법률 심사
독일 기본법(연방헌법)에는 연방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권 규정 없어
독일은 각 주(州) 헌법재판소 간, 또 주와 연방의 헌법재판소 간 상호 경합
독일 헌법재판소의 주기능은 일반 법원의 일탈을 감시 감독하는 것
한국 헌법재판소는 일반 법원 감시 기능 포기, 재판소원 금지해

한겨레신문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구하기”라는 글이 실렸다. 하네스 모슬러(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가 쓴 글이다.(한겨레, 2024.5.13.) 모슬러는 글 서두에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민주주의의 적들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은 국내외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운을 뗀 다음,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남용해 대법관을 임명하는 등 우려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폴란드에서도 이전 보수 여당이 집권 기간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무자비하게 박탈하여 삼권분립을 사실상 중단시킨 더욱 극단적인 상황이 관찰되었다”, “이스라엘과 헝가리에서도 이와 유사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모슬러는 헌법재판소가 독립성과 공정성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고, 그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 보았다. 거기다 미국 이야기를 갖다 붙여서, 모슬러는, 다수당이 ‘지위를 남용해’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을 우려스러운 상항으로 판단했다.

헌법재판소 이야기하는 중인데, 갑자기 미국의 대법관 운운하며, 그 임명이 공정하지 못해서 우려된다는 말로 담론이 바뀌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헌법재판소란 것이 없고, 일반 법원(대법원 등)에서 법률 혹은 그 적용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다. 그래서 미국에 없는 헌법재판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으므로. 대법원의 대법관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모슬러의 이 같은 논의는 서두부터 심각한 경향성을 노정한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우려를 논하기 전에, 모슬러 자신의 헌법재판소에 대한 이해가 자못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헌법재판소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구하기”라는 표제의 글에서, 왜 미국 이야기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미국은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마다 주법(州法)이 다 다르다. 그래서 주마다 주의 최고 법원이 따로 있다. 만일 다수당이 ‘지위를 남용해’ 연방 대법관 임명을 공정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비단 연방대법원뿐 아니라, 다른 각주의 법원에도 적용될 소지가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헌법재판소 관련한 것이 아니라, 미국 일반의 (대)법관 임명제도 관련한 것이 된다.

그런데, 왜 모슬러는 헌법재판소를 논하면서, 엉뚱하게 미국 법관 임명제도 관련하여 ‘우려’를 거론하는 것일까? 양자는 전혀 별개 영역이다. 누가 법관이 되는가 하는 것은 법관 임명의 인적 구성에 관한 것이고, 헌법재판소의 ‘독립성, 공정성’ 등은 그 기능에 관한 것이므로 같은 맥락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헌법재판소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미국에 관련해서 말이다.

모슬러의 이 같은 주장은 논리 전개에서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다. 한편으로, 말로는 헌법재판소가 독립성, 공정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모슬러는 법관 인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지기만 하면, 독립성과 공정성을 갖출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확실하다. 다수당이 지위를 남용하지 않고, 대법관 임명을 공정하게만 하면, 헌법재판소가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게 되나?

다수당이 지위를 남용하여 법관을 불공정하게 임명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적어도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들 수 있다. 첫째, 다수당이 임명하되, 지위를 남용하지 않는 경우, 둘째, 다수당 아닌 소수당이 임명하면서, 그 지위를 남용하지 않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경우가 다 공정을 보장하는 확실한 방법이 아니다. 다소간 지위를 이용한 남용은 다수당, 소수당을 가려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모슬러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민주주의의 적들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다고 적었다. 모슬러의 이 같은 논의는 비현실적, 비논리적이다. 첫째, 독립성과 공정성은 언제나 서로 연동되는 개념은 아니라는 점, 둘째, 연방헌법재판소와 민주주의의 적을 구분하여 2분화 한 것인데, 이때 헌법재판소는 태생적으로 민주적 기관인 것으로 설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은 물론 독일에서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기관인지를 불문하고, 민주적인 것으로 거듭나자면, 권력의 상호견제 장치 속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위 첫째, 연방헌법재판소가 독립성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공정성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권력은 서로 견제해야 비로소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십상이다. 현재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견제받지 않는 기관이고, 종종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결론을 내놓곤 한다.

모슬러의 주장과는 반대로, 헌법재판소가 독립성을 가지면, 오히려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모슬러 자신의 말을 인용해보더라도, 혹여 미국에서 다수당의 횡포로 법관이 잘못 임명된다면, 위헌법률 심사하는 대법원이 잘못 결정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려의 대상이 되는 것이겠다. 이렇듯, 다른 나라 헌법재판소도 헌법재판관이 잘못 임명되는 경우, 잘못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위협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경우, 민주주의의 적이 헌법재판소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되므로, 모슬러의 정의는 틀린 것이 된다. 또 이런 경우에는, 헌법재판소는 독립해서는 안 되고, 그 결정을 수정할 수 있는 견제기관이 필요하다. 잘못 임명된 헌법재판관(독일, 한국)이나 대법관(미국)이 한 잘못된 결정을 그대로 두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은 독립하면 안 되고, 반드시 삼권분립, 권력간 상호견제 체제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대법원은 물론 헌법재판소도 독립 기관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모슬러가 몸담고 살고 있는 독일의 경우만 해도, 헌법재판소는 독립해있지 않다. 각 주마다 고유의 헌법이 있고, 그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각 주마다 따로 있다. 이 경우 헌법재판소끼리 경합이 일게 된다. 이 같은 분권의 권력구조에서는 연방헌법재판소의 독주가 불가능하다.

위 둘째, 연방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위협당한다고 하는 말은 어폐가 있다. 이 말은 헌법재판소를 아예 민주적 기관인 것으로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헌법재판소가 월권하는 경우는 없는 것일까? 물론 있다. 앞에서 개진했듯이, 헌법재판관(혹은 미국의 경우 대법원 법관)이 정치적 다수당의 횡포 등으로 잘못 임명되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기능적으로 헌법재판소가 법 수호, 기본권 보호의 영역을 일탈하여 정치의 영역에 개입하는 경우,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모슬러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기능은 원래 법을 수호하고, 정부 권력이 법의 한계를 넘어서 시민(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기능인 법 수호와 기본권 보호란 공권력 간섭의 경계를 제한한 것일 뿐, 자유와 정치의 영역을 침해하면 안 된다. 정치는 기본권을 넘어 자유와 창조의 형성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일탈은 흔히 기본권 보호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의 영역으로 침입할 때 발생한다. 그 침입은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권, 탄핵심판권 등을 가질 때 발생한다.

모슬러의 주장과 달리, 독일 헌법재판소는 태생적으로 정당 혹은 정치권력의 일탈 등에서 오는 위험으로 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또 구제적으로 사법권력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한 기관으로 탄생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기본법(1949.5.8.)이 만들어진 다음인 1951년에 설립되었는데, 그 주요 목적은 법원의 판결에 대한 감시였으며, 이것은 나치 독재정권 하에서 자행된 사법권력의 일탈에 대한 반성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말 그대로, 법을 수호하는 기관이지, 정치권력에 개입하고 이를 견제하는 기관이 아니다.

정당 관련하여 독일 기본법 제21조 제2항에 ‘위헌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탄핵‘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이 조항에 근거하여 주류정치권에서 2차례 정당해산 시도가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심판 대상이 되는 정당의 이념과 목표의 위헌성뿐 아니라 그 이념과 목표를 이루려는 정당 활동이 실효적으로 자유민주 질서를 파괴할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등 독일은 정당해산 여부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연합뉴스, 2017.1.17.)

참고로, 탄핵 관련해서도, 독일에서는 연방대통령에 대해서만은 연방하원이나 연방상원이 기본법 또는 기타의 연방법률의 고의적 침해를 이유로 연방헌법재판소에 탄핵소추할 수 있을 뿐이다.(독일기본법 제61조)

한편, 독일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일반 법원을 감시할 뿐 아니라, 연방헌법재판소와 각 주(Bund) 헌법재판소 간, 또는 주 헌법재판소 상호간에도 견제와 감시가 이루어진다. 독일 기본법 제100조 제3항에 따르면, “주 헌법재판소가 기본법의 해석에 있어서, 연방헌법재판소나 다른 주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견해를 달리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당해 주 헌법재판소는 연방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심판받을 수 있다.“ 참고로, 독일은 주마다 주 헌법이 따로 있고, 그에 따라 각 주마다 헌법재판소가 따로 있다. 한국의 임명직 헌법재판관 9명이 과두 독재하는 그런 체제(시스템)가 아니다.

모슬러는 헌법재판소를 딱 부러지게 민주적 기관으로 정의하고 싶어하지만,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독일 헌법재판소와 같은 분권적 구조에 입각하지 않은 한국 헌법재판소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 또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권을 가져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모슬러의 주장은 모슬러가 몸담은 독일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 헌법재판소는 삼권분립 체제에 편입되어 있지 않고, 그 정당해산권 및 광범위한 탄핵심판권은 독재정권의 전통으로부터 그 맥을 이어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침해하며, 1987년 헌법의 민낯을 상징함은 물론, 국회, 사법, 행정 등 정부 권력의 일탈을 대변하는 한 상징물이다.

헌법재판소에 의한 기본권(헌법 제111조, 정당해산권, 탄핵심판권) 침해를 그대로 두고서, 무엇을 헌법 전문에 싣겠다고 국회에서 떠드는 것이 정치적 수사(修辭, 헛소리), 눈 감고 아웅 하기, 실질 없이 생색만 내기이다. 5.18 민주항쟁을 헌법 전문에 싣는다고 해서, 사회가 저절로 민주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헌법 제1조에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으나, 이것은 한갓 글자로 박제되어 있을 뿐, 무용지물 사문화(死文化)되어 있는 것과 같다.

독일 어느 대학 정치학과 교수라고 하는 모슬러는 독일의 사정과도 동떨어진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또 독일 헌법재판소 이야기하면서, 헌법재판소 없이 일반 법원에서 위헌법률심사하는 미국 이야기를 끌어대는 것 자체가 뜬금없다. 헌법재판소가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면, 그렇다면, 미국 법원이 행정, 사법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나?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권 가져야 한다면, 미국 법원이 대놓고 정당 해산하겠다고 나서야 하나? 미국에서는 법원이 독립성을 가지고, 상하 양원, 행정부 위에 존재해야 하나? 아니다.

모슬러는 독립성과 정당해산권을 가진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첨병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같은 모슬러의 민주주의론은 삼권분립의 이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삼권분립의 상호 견제 구도를 벗어난 헌법재판소는 민주 아닌 과두독재 기구이다.

독일에도 없는 제도를 마치 독일의 것인 양 빗대는 모슬러는, 아마도 독일이 아니라, 한국의 헌법재판소를 짐짓 민주적인 제도로 의제하고, 또 한국 헌법재판소가 현재 행사하고 있는 정당해산권이 정당하다는 것을 강변하는 첨병으로서의 역할을 떠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독일 기본법에는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권을 갖는다는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허황한 모슬러의 주장을 싣는 한겨레 신문도 하릴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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